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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엄마의 발바닥

#하루10시간

워홀을 시작하자마자 저녁에 일하던 식당 근처로 이사를했다.
오전 10시쯤 집에서 나가서 30분버스를 타고 10시 반쯤 첫번째 가게에 도착해서 일을 하고 4시-4시반쯤 버스를 타고 다시 30분. 집근처에 있던 두번째 식당에서 퇴근하고 집에오면 10시반에서 11시.
밥먹는시간 점심 30분, 저녁 30분, 버스로 이동하는시간 왕복 1시간 정도를 제외하고 집에서 나가는 10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대충 10시간을 서서 일했다. 나의 근무시간, 패턴이 아무래도 엄마의 그것과 비슷했을까.
처음에는 양쪽에서 주 5일로 시작했지만 곧 양쪽에서 주 6일로 늘렸는데, 웃긴게 휴일을 맞추지 못해서 토요일과 일요일 하루씩 번갈아가며 쉬었다. 토요일은 오전에 쉬고 일요일은 오후에 쉬고. 그러니 결국 주 7일을, 총 거의 60시간을 일했던거다.

그렇게 일한지 한 5개월쯤 됐을때 였을까.. 어느날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침에 막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해 딛는 첫발이 그렇게 아팠다. 두세걸음 걸으면 고통은 금방 사라졌다. 나중에는 아침에 일어나 발을 딛는게 무서울 정도였다. 도대체 이유를 몰랐던 나는 증세가 계속되자 미친듯이 검색했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족저근막염과 가장 증상이 유사했다. 찾아보니 너무많이 걸어도 걸린단다. 하하.. 내가 많이 걷긴했지.. 뉴질랜드에 와서 쿠키와 머핀으로 8키로까지 찌운 나의 몸무게가 일을 시작한지 몇달만에 다시 원상복귀가 되었을 정도니까.. 그러다 설상가상으로 감기까지 된통 걸렸다.

나는 원래 기관지가 약해서 목감기에 쉽게걸리는 체질인데, 그래도 목이 아파올때 관리를 잘해주면 미열정도에서 그치고 넘어가는데 그렇지 못할경우 코감기로 넘어가서 오랫동안 고생을 한다. 뉴질랜드에 와서 그만큼 심하게 아픈건 처음이었다. 타지에서 아프면 서럽다고 했던가. 주말에 아파서 집에서 쉬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지 못할때부터 식당에서 일을 했다.
오전 10시쯤 출근해서 오후 10시쯤 퇴근했기 때문에 (말이 열시지 집에오면 거즌 11시였다) 내가 볼수 있었던 엄마의 모습은 아침일찍 우리 밥을 차려주고 다시 잠을 잠드는 모습이나 어쩌다 늦게까지 안자고 버티다 마주한, 퇴근하고 돌아온 피곤에 젖은 엄마의 모습 뿐이었다. 엄마는 일복이 어찌나 많은지 그 힘든 식당일을 한달에 이틀만 쉬어가며 돈을 벌었다. 심지어 그 금쪽같은 이틀에 다른가게에 나가서 땜빵을 해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땜빵을 나갔던 가게에 가서 저녁밥을 먹고 엄마와 함께 온 적이 있었는데 사장 아주머니가 "엄마가 일을 너무 잘해서" 부탁했다고, 엄마 쉬는날인데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한달을 꼬박, 다음달 쉬는날까지 거의 6주를 못쉬고 일한적도 있었다. 아빠는 무능했고 여느 엄마들과 같이 우리엄마도 생활력이 강했기에 자식들을 위해서 그렇게 할수 있었을 것이다.

어릴때는 자주 쉬지도 않고, 쉬는날은 피곤해서 잠만 자고 누워있는 엄마가 미웠다.
엄마가 쉬는날이면 맛있는것도 해주고 나랑 놀아주면 좋겠는데 엄마는 언제나 자고있었다. 그때는 어렸다. 엄마가 왜 맨날 잠만 자는지, 나는 몰랐으니까. 하지만 워홀을 하면서 나는 알게 됐다. 엄마가 왜 그랬었는지.

엄마는 나를 24살에 낳았다. 내가 워홀로 투잡을 뛰던 때가 만 서른즈음. 그나이에 엄마는 이미 5년이상 식당에서 그런식으로 일을하고있을 시기다. 침대에 누워 엄마도 내나이때 이렇게 일을 했을텐데.. 나는 이 나이에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지금도 그런일을하고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한테서 나오는 돈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너무 가엾고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런생각이 들수록 나는 더 단단해져갔다.
엄마의 그 날들이 아깝지 않게 반드시,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지.

발바닥의 고통은 투잡을 그만두자마자 마법처럼 사라졌다. 허무할 정도 였다.

역시, 아픈데는 쉬는게 답.



엄마는 지금도 쉬지못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을 많이 줄이긴 했지만..
지금 엄마의 발바닥은, 괜찮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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