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끝은없다
우리는 대부분 12년이라는 시간을 영어와 함께 보낸다.
중학교 때 부터 영어를 배운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언제나 "중간" 이었으므로, 썩 잘하지는 못했다.
우습게도 공부할 때 과목을 엄청 차별하였는데, 영어는 내가 열을 올리는 과목은 아니었다.
수능을 보고 그토록 싫어했던 수학과 영어, 그리고 국사와 이별하는점이 가장 기뻤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 400점짜리 토익점수표를 학교에 제출해야 했다.
고3 수능을 기점으로 놓았던 영어 공부는 딱 그때, 토익점수 400점을 위해서 한두달 공부한게 다였고,
그 후로 약 5년, 나는 영어 근처에도 간 적이 없었다.
뉴질랜드로 입국하기 전, 국가지원 프로그램에서 지정된 학원으로 학비를 전부 내고 입학 허가서를 받은 상태였다. 입국 할 때 영어로 뭔가 질문을 받을까봐, 뉴질랜드 입국 심사장에서 나의 심장은 쫄아서 번데기가 되어 있었다. 별일없이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여 기쁜마음으로 주변의 외국인들과 엑스레이 검사대를 구경하는 내 눈이 경찰로 보이는 듯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내 가방이 모두 오픈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사람은 나에게 "randomly" 라는 말을 강조했고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내 가방을 열어보는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 했지만 두리번거리는 내모습이 이상해서 내 가방을 검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뉴질랜드에서는 입국 하는 사람들을 랜덤 하게 골라 가방을 모두오픈하여 검사하는데, 말로는 엑스레이 검사기가 틀리지 않고 잘 검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 다음번 입국 때 알아들었다.
학원에 가면, 레벨테스트를 받는다.
실력에 따라 반이 나뉘는데, 내가 어떤 반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알기 위한 나의 영어 레벨을 알아보는 테스트 이다. 창피하게도 나의 등급은 가장낮은 엘레멘터리.
못하는 순으로 비기너 beginner - 엘레멘터리 elementary - 프리 인터미디엇 pre-intermediate - 인터미디엇 intermediate - 어퍼 인터미디엇 upper-intermediate - 어드밴스 advanced 순으로 레벨이 정해지는데, 비기너는 알파벳 수준인거고, 엘레멘터리는 알파벳만 겨우 뗀 수준이라 생각하면 된다.
반대로 어드밴스는 거의 원어민 수준급인데 보통 어학원에서는 비기너와 어드밴스 반은 그 수가 적어 반을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요한것은 내가 알파벳을 갓 뗀 수준이었다는 거다. 창피하지만 그랬다.
뭐 어쩌겠는가, 분명히 배운것 같은데 모르겠고, 스펠링이 가물가물한데. 한동안 쓰지않았던 뇌의 어떤 부분에 갑자기 엑세스 하려니, 나도 여간 피곤했을테지.
아무리 오랫동안 잊고있던 기억이라도 한번 기억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기억나기 마련이다. 십년, 이십년 된 길도 평소에는 그저 생각나지 않지만 그 길에 직접 가 보면 그 간판 하나하나 그집 사장님 표정까지 기억나는 법이렷다. 나는 뭐, 그렇게 믿고싶었다.
당시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입국한 사람은 대략 15-20명 정도 됐던걸로 기억한다.
그중 나를 포함 3명이 같은 엘레멘터리였고, 프리인터와 인터에 가장 많았고, 어퍼인터에 2-3명 정도 됐던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가 2013년 12월 첫째 주 였는데, 지금은 2020년 2월이다.
과연 나의 영어실력은 얼마나, 어떻게 성장했을까.
아니 과연,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였던 걸까.
나는 지금 직장에서 키위, 아르헨티나, 그리고 독일 사람과 함께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영어를 많이 모른다.
언어의 장벽이란 이런것일까 싶다. 가끔은 그냥 포기하기도 한다.
그럼 짜증은 잠깐 나지만, 결국 편안해진다. 포기하면 편하니까.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한, 평생의 숙제와도 같은것이리라.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워홀러라는 이름의 노동자 (0) | 2023.01.26 |
---|---|
초등학생이 되다 (0) | 2023.01.25 |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사는 미친놈 (0) | 2023.01.23 |
어떻게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사냐 (0) | 2023.01.21 |
평범한 보통 여자 사람 (0) | 2023.01.20 |